배천은 한자로는 백천(白川)이 맞다. 그러나 지명은 배천으로 부르기 때문에 배천유씨라 한다. 시조 조지린(趙之遴)은 중국 송나라 태조(조광윤)의 맏아들인 조덕소(趙德昭:위왕)의 셋째 아들로 979년(고려 경종 4년) 황제 등극 문제로 일어난 난을 피하여 우리나라에 건너와 지금의 황해도 배천군 도태리에 정착했다. 그는 고려 현종 때에 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다.
그 뒤 아들 조양유(趙良裕)가 고려 덕종과 정종 때 판위위사승(判衛尉寺丞)을 지냈고, 찬화익조공신(贊化翊祚功臣) 문하시중으로 백천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배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도태리 고정산에 있고, 향사일은 10월 1일이다.
고려시대에 평장사를 지낸 조중장(趙仲璋)을 비롯하여 대제학을 지낸 조옥(趙玉), 병부상서를 지낸 조문위(趙文胃), 문하시중 조진(趙珍), 대장군 조천주(趙天柱), 검교시중 조선(趙瑄) 등 많은 관직자들을 배출했다. 조광은 12세 때 원나라 연경에 가서 한문을 배우고, 몽고어를 통달하여 중서성역사(中書省譯史)로 있다가 귀국했다. 그 뒤 밀직부사, 동지밀직사사를 지내고 1392년 이성계의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으로 부흥군에 봉해졌다. 조기(趙琦)도 개국공신으로 은천군에 봉해지고 동지중추원사를 지냈으며 문하시랑찬성사에 추증되었다.
조용은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 계림군 판관을 지냈다. 태조 즉위 후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후에 간의대부에 임명됐다. 조준 등과 함께‘사서절요’를 편찬했다. 조용은 젊어서부터 경사에 넓게 통하여 당시 유학의 으뜸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가 나왔다.
조헌(趙憲. 1544~1592)은 선조 때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정주목 교수를 거쳐 통진현감, 보은현감, 전라도 도사를 지냈다. 1591년 일본의 도요토미가 명나라를 치기위해 길을 열어줄 것을 요청 했을 때 사신을 참수하라고 왕에게 상소 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우 김경백, 전승업 등과 함께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1600여명을 규합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승병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수복하였으나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에 맞서 금산 전투에 참가하여 의병들과 함께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다.
제자들이 시신을 한데모아 묻고 "700의총"이라 했다. 그는 율곡 이이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학자의 한사람으로서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킨 유학자 이다.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와 함께 임진 4충신으로 꼽힌다.
조정호(趙廷虎)는 161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정자(正字)를 거쳐 찰방(察訪), 저작(著作), 전적(典籍) 등을 지내다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조석윤(趙錫胤)은 162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조정랑, 승지 등을 지낸 뒤 대제학으로 "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조정견(趙庭堅, 1558 戊午生) : 문과(文科) 선조28년(1595)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석윤(趙錫胤,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인조6년(162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몽언(1748 戊辰生) : 문과(文科) 정조6년(1782) 평안도문과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규현(趙圭鉉, 1856 丙辰生) : 문과(文科) 고종11년(1874)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조부우(趙府隅, 1491 辛亥生) : 문과(文科) 중종17년(1522) 별시 을과(乙科), 조석주(趙錫周, 1641 辛巳生) : 문과(文科) 숙종6년(1680) 정시 을과(乙科), 조광우(趙光祐, 1849 己酉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을과(乙科), 조원지(趙元祉, 1849 己酉生) : 문과(文科) 단종1년(1453) 식년시 정과(丁科), 조상옥(趙相玉, 1788 戊申生) : 문과(文科) 순조19년(1819) 식년시 병과(丙科), 조예근(趙禮根, 1796 丙辰生) : 문과(文科) 헌종6년(1840)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260명이 있다. 문과 68명, 무과 40명, 사마시 123명, 역과 19명, 의과 2명, 음양과 7명, 율과 1명이다.
현대 인물은 조경철(천문학박사, 연세대교수), 조내벽(라이프그룹회장), 조영식(경희대총장), 조영장(국회의원), 조기홍(여.성신여대부총장, 성신학원이사장), 조관수(성균관대교수), 조재영(환경농학회고문), 조의설(문학박사,연세대부총장), 조군실(기원산업사장), 조석봉(동구여상교장), 조석준(서울대교수), 조선휘(서울대교수), 조성식(고려대교수), 조우현(연세대교수), 조원준(천도제약사장), 조인복(석탄공사 총무이사), 조종남(철학박사), 조종수(공학박사), 조향록(목사), 조용석(항일독립투사), 조용주(항일독립투사), 조종구(독립유공자), 조진만(대법원장), 조형균(항일독립투사), 조효원(주맬다이브대사), 조희갑(정주명예군수), 조진석(의학박사,재단법인오산학교이사장), 조건호(송탄시장), 조군환(의료법인경농의료재단이사장), 조영준(인천시기획관리관), 조하급(서문여고교장), 조우각(인천대교수), 조태진(중앙일보부장), 조명하(조외과병원장), 조병직(고법판사), 조병덕(재단법인오산학교이사), 조병주(아주대교수), 조병수(경희대교수), 조붕연(미국오하이오주교민회장), 조서희(성산학원이사장), 조승환(대한제과협회회장), 조연호(지법판사), 조기준(성균관전교), 조기엽(해군소장), 조광휘(충남공무원교육원장), 조대룡(청와대비서관), 조동성(서울대교수), 조동린(독립유공자), 조동성(독립유공자), 조동원(미국일리노이대교수), 조동우(미국위치다대교수), 조명준(대한혈액원원장), 조영일(수원대교수), 조예환(전국베아링협회회장), 조우준(오류산업(주)사장), 조옥봉(스님,동양화가), 조의환(한국과학원교수), 조응하(미국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교수), 조재연(지법판사), 조종후(전북대교수), 조진규(경희의료원장), 조창석(삼영모방(주)사장), 조명철(통일교육원장, 국회의원), 조철호(통일교육원교수)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부흥부원군파…숙위공파. 경은공파. 평숙공파. 유후공파, ▲은천군파…강소공파. 판서공파. 충위공파. 참의공파. 문정공파 등이다.
본관 배천(白川)은 황해도 남동부에 위치한 연백군(延白郡)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 때 도랍현(刀臘縣) 또는 치악성(雉嶽城)이라 하였다. 신라 경덕왕 때는 구택현(雊澤縣)으로 개편하여 해고군(海皐郡)가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배주(白州)로 바뀌어 개흥부·충익현·부흥군 등으로 불리우다가 의종 때 개흥부지사로 승격되었다. 1369년(공민왕 18) 다시 배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 배천군으로 개칭되었다. 1915년 연안군(延安郡)과 병합하여 연백군이 되었고 1953년 이후 황해도 연백군이 되었다.
배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배천강씨(白川姜氏), 배천김씨(白川金氏), 배천류씨(白川柳氏), 배천백씨(白川白氏), 배천유씨(白川劉氏), 배천이씨(白川李氏), 배천장씨(白川張氏), 배천조씨(白川趙氏), 배천최씨(白川崔氏), 배천호씨(白川扈氏), 배천호씨(白川鎬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금당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 충남 청양군 화성면 광평리, 황해도 연백군 도촌면 마천리, 평남 용강군 대대면 화조리, 평북 정주군 덕언면 덕성동, 함남 북청군 속후면 광천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배천조씨는 1985년에는 총 14,313가구 58,594명, 2000년에는 총 20,734가구 66,15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천여 가구, 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21,892명, 부산 1,664명, 대구 652명, 인천 7,003명, 경기 13,815명, 강원 2,462명, 충북 2,224명, 충남 5,328명, 전북 902명, 전남 581명, 경북 942명, 경남 1,007명, 제주 121명이다.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충남 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9,124명, 부산 1,680명, 대구 782명, 인천 10,674명, 광주 170명, 대전 2,950명, 울산 463명, 경기 19,767명, 강원 2,344명, 충북 2,330명, 충남 2,821명, 전북 855명, 전남 314명, 경북 929명, 경남 773명, 제주 179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인천, 경기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대전과 충남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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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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