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채송년(蔡松年)은 고려 고종 때 추밀승선을 지냈다. 그는 최향의 난을 평정했으며 몽고병의 침입을 막아낸 뒤 대장군이 되었다. 묘소는 강원도 평강군 유진면에 있다. 그 뒤 후손들이 평강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의 맏아들 채정(蔡楨)은 중서시랑평장사로 평강군에 봉해졌고, 둘째 채자화(蔡子華)는 문하시랑평장사, 상장군, 판이부사 등을 지냈다. 시조의 두 아들과 손자, 증손 등이 재상에 올라‘8정승’을 배출했다. 채씨는 조선시대 채세영, 채유후, 채제공 등 명신과 명상을 낳았다. 채세영은 여말의 정승 채종린의 7대손으로 중종-명종 때 벼슬하여 호조판서, 좌참찬을 지냈다.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채제공(蔡濟恭.1720(숙종 46)~1799(정조 23))은 1735년(영조 11) 향시에 급제한 뒤, 1743년 문과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를 거쳐 승정원도승지에 임명되었다. 이해에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어 세자 폐위의 명이 떨어지자 이를 극력 막아 철회시켰다. 이후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762년 모친상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이해 사도세자가 폐위되고 사사되었다.
그 뒤 한성부좌윤·대사간, 한성부판윤,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세손우빈객(世孫右賓客)이 되어 세손의 교육과 보호를 담당하기도 했으며 공시당상(貢市堂上)·지경연사·홍문관제학이 되고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다. 세손(뒤의 정조)과의 관계는 이때 깊어졌다. 1774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후 병조판서와 내국제조(內局提調)를 지냈으며 정조가 왕세손으로 대리청정한 뒤에는 호조판서·좌참찬으로 활약했다. 영조가 죽자 국장도감의 책임자가 되어 국장사무를 주관하다가 곧 형조판서에 제수되었다.
1779년 당시의 권세가 홍국영과의 마찰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가, 이듬해 홍국영이 실각하자 다시 예조판서에 등용되었다. 1788년 우의정, 1790년 좌의정이 되어 정사를 좌우했다. 저서로는‘번암집’이 전하며,‘경종수정실록’·‘영조실록’·‘국조보감’의 편찬에 참여했다. 1801년(순조 1) 황사영백서사건으로 관직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관작이 회복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채유후(蔡裕後, 1599 己亥生) : 문과(文科) 인조1년(1623) 개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채동식(蔡東寔, 1841 辛丑生) : 문과(文科) 철종14년(1863)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채침(1841 辛丑生) : 문과(文科) 중종11년(1516) 중시 이등(二等), 채홍면(蔡弘勉, 1766 丙戌生) : 문과(文科) 순조15년(1815) 별시2 을과(乙科), 채홍백(蔡弘伯, 1839 己亥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별시 병과(丙科), 채위하(蔡緯夏, 1720 庚子生) : 문과(文科) 영조26년(1750) 식년시 병과(丙科), 채세영(蔡世英, 1490 庚戌生) : 문과(文科) 중종12년(1517) 별시 병과(丙科), 채정하(蔡廷夏, 1720 庚子生) : 문과(文科) 영조29년(1753) 식년시 병과(丙科), 채응만(蔡膺萬, 1677 丁巳生) : 문과(文科) 경종3년(1723) 증광시 병과(丙科), 채대영(蔡大永, 1825 乙酉生) : 문과(文科) 고종4년(1867)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158명이다. 문과 44명, 무과 16명, 사마시 96명, 의과 2명이다.
소설가 백릉 채만식은 전북 옥구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중퇴한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를 역임했다. 1925년 단편‘세길로’가 조선 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한다.
희곡‘사라지는 그림자’와 단편‘화물자동차’‘부촌’등 동반 작가적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장편‘탁류’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건을 놓고 사회의 비리를 풍자한 작품이다.
채동선은 바이올린 연주자로 유명하다. 전남 보성 출신인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베를린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 뒤 1929년 귀국한다. 국내에서 바이올린 독주회와 작곡발표회를 잇따라 열면서 명성을 떨쳤다.
채구석(蔡龜錫.1850∼1920)은 제주 4.3민란의 진원지인 제주도 남서쪽에 위치한 대정군의 군수를 역임했다. 그는 당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시종일관 인본주의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인물로 알려졌다. 채구석은 영화‘이재수의 난’에 등장인물로 나왔으며 특히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이 채 군수의 5남 채몽인의 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밖에 현대 인물은 채문식(국회의장), 채명신(주월사령관), 채수한(영남대교수), 채정수(동아대교수), 채인식(경희대교수), 채중기(영남대교수), 채훈(숙명여대교수), 채재우(인하대교수), 채제천(단국대교수), 채기풍(충주경찰서장), 채동환(청주시장), 채범석(서울대의대교수), 채동규(서울대약대학장), 채태병(서울지법판사), 채명묵(변호사), 채영철(국회의원), 채의석(유엔대사), 채창신(서원풍력기계(주)사장), 채호석(한국중공업전무), 채영석(국회의원), 채항석(예비역소장, 채씨대종회장), 채수용(우성공업회장), 채의병(의학박사), 채응석(의학박사), 채의엽(경북대교수), 채완(동덕여대교수), 채관석(고려대대학원장), 채중묵(전북대교수), 채예석(숙명여대약대학장), 채동배(전남대교수), 채증석(예비역준장), 채병천(고속자동차공업사장), 채규성(판사), 채영수(판사), 채영복(한국화학연구소장), 채방은(서울지검검사), 채수철(원주지청장), 채동욱(서울지검검사), 채수한(한국은행런던사무소장), 채화묵(한양종합검사(주)사장), 채영묵(시인), 채기묵(군산시장), 채의석(이리시장), 채몽주(화남상사사장), 채규삼(전주교육장), 채우석(한의사), 채정룡(군산대교수), 채진묵(전북도 공보실장)씨 등이 있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원(源) 홍(洪), 32世 영(榮) 상(相), 33世 열(烈) 환(煥), 34世 건(建) 기(起), 35世 호(鎬) 현(鉉), 36世 순(淳) 한(漢), 37世 식(植) 모(模), 38世 병(炳) 용(容), 39世 균(均) 재(在), 40世 진(鎭) 일(鎰), 41世 제(濟) 구(求), 42世 수(秀) 락(樂)이다. 주요파는 ▲정선공파 ▲돈령공파 ▲소감공파 ▲어사공파 ▲판서공파 ▲목사공파 ▲생원공파 ▲고성군파 ▲중암공파 등이다.
본관 평강(平康)은 북한에 있다. 강원도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부양현(斧壤縣) 또는 어사내현(於斯內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광평(廣平)으로 고쳐서 부평군(富平郡:金化)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평강(平康:平江)으로 개칭하고 동주(東州:鐵原)에 예속시켰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강군으로 승격시켰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유진면을 판교군에, 서면의 일부를 철원군에 편입시켰으며, 회양군 일부를 평강군에 편입시켜 군 영역을 조정하였다. 평강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평강김씨(平康金氏), 평강전씨(平康全氏), 평강채씨(平康蔡氏), 평강최씨(平康崔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전남 보성군 복내면 용동리,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동정리, 전북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전북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전북 군산시 임피면 영창리,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함경남도 홍원군 삼호면 중평리, 함경북도 경원군 경원면 송천동, 함경북도 경원군 용덕면 용향동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평강채씨는 1985년에는 총 14,327가구 59,955명, 2000년에는 총 21,373가구 69,25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7천여 가구, 1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6,690명, 부산 2,544명, 대구 1,006명, 인천 2,252명, 경기 7,139명, 강원 2,126명, 충북 1,704명, 충남 4,176명, 전북 9,180명, 전남 9,175명, 경북 1,179명, 경남 1,979명, 제주 803명이다. 전북과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7,517명, 부산 2,684명, 대구 1,157명, 인천 4,269명, 광주 3,902명, 대전 1,623명, 울산 618명, 경기 14,195명, 강원 1,957명, 충북 1,802명, 충남 2,943명, 전북 8,089명, 전남 4,843명, 경북 1,074명, 경남 1,692명, 제주 891명이다. 전북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