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負債)의 경제학
부채(負債)의 경제학
  • 정종석 발행인
  • 승인 2014.09.26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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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등 켜진 가계부채와 정부채무

     
 
 
우리 경제에 혹시라도 '경고등'이 켜진 것은 아닌가.

가계부채 상황이 금융위기 때보다 나빠진 가운데 정부 빚의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3·4분기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세월호 참사 직후보다 더 악화했다. 특히 4·4분기 경기전망치도 반도체·조선 등 일부를 제외한 자동차·철장·섬유 등 대부분 업종에서 실적부진이 예상된다. 당분간 바닥경기 상황은 계속될 전망이다. 대다수 기업들은 소비부진과 환율불안, 노사불안, 대중 수출부진 등 구조적인 문제들로 갈수록 경영활동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위기로 내몰 뇌관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이와 관련한 여러 지표들이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 90% 이상으로 아시아 최고라는 알리안츠의 ‘글로벌 부(富) 보고서’는 일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 감축이 진행된 선진국과 달리 줄기차게 가계부채가 증가한 결과다. 분기로 볼 때 가계부채는 유일하게 2013년 1분기에 뒷걸음질쳤다가 다시 급증하는 추세다.

물론 부채증가만 보고 가계재무 상태를 판단할 수는 없다. 부채가 느는 것 이상으로 금융자산이 증가하면 건전성은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예금·보험·주식투자 등으로 운용한 돈에서 차입금을 뺀 것으로 여유자금 규모를 뜻하는 자금 잉여가 증가했다는 것은 가계가 그만큼 돈을 쓰지 않고 쌓아뒀다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민간 소비가 위축됨에 따라 가계 잉여자금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순금융자산 증가가 가계부채의 위험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와 함께 정부의 빚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쓰는 돈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경기 침체로 세금은 걷히지 않아 지난 7월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가라앉은 경기를 살리겠다며 내년 예산을 애초 계획보다 더 확장적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세수 확보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증세하지 않고 재정건전성도 지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나라 곳간은 텅 비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내년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했다. 올해보다 지출을 5.7% 늘리기로 했는데, 2009년(10.6%)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어려운 세입 여건을 고려하면 총지출을 대폭 축소해야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경제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금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재정확대 등 가용한 경기부양 수단을 총동원하는 등 저돌적 경제정책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취임 이후 최 부총리가 기회가 있는 대로 한은의 고유 영역인 ‘금리 인하’ 주문을 줄곧 쏟아내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속도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성장률보다 높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문제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을 경우다. 세수는 더 줄고 빚은 더 늘어나게 된다. 국가채무는 2012년 GDP 대비 32.2%에서 지난해 34.3%로 늘었으며, 올해 35.1%를 거쳐 내년에는 35.7%까지 증가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 회복 속도가 정부의 기대에 못 미치면 국가채무는 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가 자랑하는 재정건전성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가 재정위기를 겪는 스페인의 경우 2008년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는 48.0%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04.0%까지 불어났다. 2000∼2012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율은 우리나라가 12.3%로 포르투갈(10.5%), 스페인(7.4%), 그리스(6.7%), 이탈리아(3.6%)보다 높았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 부채 규모가 큰 것도 부담이다. 정부가 지난해 발생주의 기준으로 일반정부 부채에 비금융공기업까지 포함해 산출한 통계를 보면 공공부문 부채는 2012년 기준으로 GDP 대비 59.6%인 821조1000억원에 이른다.
 
지금 정부에서 가계부채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건 전문가들의 견해와 큰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주장이 1∼2년 내에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며, 실물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이미 심각하다고 분석한다. 또한 연소득 5000만∼1억원 계층이 ‘부채의 덫’에 걸려 소비를 못 하고 있으며, 이것이 내수침체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개인사업자)들의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 해 동안 18조원이나 급증했다. 내수경기 침체 장기화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빚을 내 빚을 갚거나 사업체 적자를 메우는 이들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특히 신용등급 하락으로 은행보다 이자가 비싼 농·수·신협 등 상호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다. 자영업자들이 은행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상환을 미룬 금액만 1년여 동안 1조원이 넘는다.
 
총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상황이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훨씬 악화돼 있다. 이대로 가면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가계부채가 “미리 빼먹은 곶감”이 아닌 지를 깊이 반성해 볼 일이다.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되살아나는듯 했던 소비심리마저 다시 정체를 보이고 있다. 소비심리 제고에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기준금리 인하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최경환 경제팀이 가계부채 문제와 함께 국가채무 증가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가채무 규모는 크게 문제될 수준이 아니지만 실제로 걱정되는 것은 증가 속도이다. 증가속도가 이대로 가팔라지면 가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빚잔치에 빠지는 ‘부채 이중고’가 우려된다. 이번 기회에 최 부총리는 가계부채와 재정건전성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올해 발행된 '부채로 지은 집(House of Debt)'은 떠오르는 젊은 신예 경제학자인 프린스턴대의 ‘미안’과 시카고대의 ‘수피’가 미국의 금융위기에 관해 분석한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은 미국의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에 관한 예리한 분석을 제시한다. 이들은 위기 직후인 2008년부터 독창적인 실증분석을 발전시켜 학계의 조명을 받아왔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의 카운티(행정구역 단위) 내 우편번호가 서로 다른 지역들의 데이터를 활용, 주택담보대출이 가장 크게 증가한 지역이 주택시장의 거품과 그 붕괴가 가장 심했음을 나타낸다. 특히 1996년 주택담보대출이 거절된 비율이 높은 지역이 이러한 부채가 가장 크게 증가했다. 이는 부채의 증권화의 발전을 배경으로 한 주택담보대출 공급의 증가 때문이었다. 또한 이들은 부채가 높고 거품 붕괴 이후 순자산이 크게 줄어든 지역이 빚의 부담에 짓눌려 소비와 경제의 회복이 가장 미약했다고 보고한다.

결국 엄청난 빚이 금융위기의 뿌리였고 경제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채가 증가한 배경으로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이다. 서브프라임 부채가 증가한 지역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금융산업으로부터 정치자금 헌금이 크게 높아졌고, 이들의 지원을 받은 정치인들은 규제완화를 위해 투표했다는 것이다.

최근 야당에서는 박근혜정부 2기 경제팀의 전방위적 경기부양정책이 ‘부채의 경제학’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경기부양책 가운데 노동소득(임금소득) 증대 방안이 제외됐다는 지적이다. 즉, 최경환노믹스의 내수, 서비스업, 가계소득 강조는 타당하지만  금융 레버리지 확대를 통한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부양 등은 ‘가계부채’와 상충(Trade-off) 관계여서 내수위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 경제의 부채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2분기 가계부채는 1,040조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부채의 절반이 넘는 주택담보대출이 2분기에만 10조원이 증가했다. 정부는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부동산 규제를 풀어 빚을 권한다.하지만 정책담당자는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없다고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소득은 정체되고 부채만 늘어나는데 정말 그럴까. 금융은 반드시 부채를 부른다. 현재 자본주의는 부채를 통한 성장이다. 금융이 경제성장을 끌어간다는 것은 부채로 소비하고 투자하여 경제성장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미래의 부를 앞으로 끌어 당겨서 현재 시점에서 사용하는 것을 경제성장이다. 금융 즉 부채를 통한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종이로 지은 집'이나 다름이 없다. 바람이 한번 ‘휙’ 하고 불면 집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이미 매킨지는 부채상환 부담을 고려하면 한국 중산층 가구의 절반 이상이 적자상태라고 보고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서민들은 지금 빚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부채로 지은 집'이 와르르 무너진 미국의 경험이 우리의 일이 되지 않도록 정말로 유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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