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청도 김씨(淸道金氏)-75,567명
(100)청도 김씨(淸道金氏)-75,567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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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지대(金之岱)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다.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의 7세손이며 고려 때 시중을 지낸 김여흥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거란의 난이 일어나자 조충을 따라 출정한 뒤 개선한다. 후에 청도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청도를 본관으로 삼았다.

청도김씨 후손들은 시조 김지대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남긴 ‘충효쌍수(忠孝雙手)’를 가훈으로 삼고 7백여년 동안 실행에 옮겨왔다. 실제로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에 있는 청도김씨의 대종재실(大宗齋室)의 이름은 ‘쌍수당(雙修堂)’이다.

고려 충혜왕 때 대호군으로 조적의 반란을 평정,1등공신에 오른 김선장도 청도김씨 가문의 인물이다.‘고려사’에는‘김선장 등을 1등공신으로 삼아 전각에 초상을 그려 걸고 그 부모와 처에게도 작위를 내리고 전(田=밭) 백결과 노비 10명을 주었다’고 적혀있다.

김한귀(金漢貴)는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최영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조선조에 와서는 세종 때 형조와 호조판서를 역임한 김점(김한귀의 손자)과 세조 때 단종복위를 도모한 김차산이 유명하다.

김난상은 을사사화로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선조 때 직제학을 거쳐 대사성에 오른다.

임진왜란 때 임난공신에 책록된 김몽룡과 김희방도 있다. 순조 때 성리학자로 유명한 김응하는 문하에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김시성은 청도김씨가 낳은 전설적인 무장이다. 1636년 무과에 급제, 병자호란후 소현세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 호위를 맡았다. 그는 용천부사로 있을 때 민가에 내려와 주민들을 괴롭히는 호랑이 두 마리를 단 두발의 화살로 사살할 만큼 활솜씨가 뛰어났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는 청도김씨가 낳은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그에 대해서는 생전의 가계나 내력, 심지어는 출생한 해와 죽은 해까지도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서울로 옮겨와 활동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는 일찍부터 실용적이고 정밀한 지도제작에 뜻을 두고 30여 년간 전국을 답사했다. 마침내 청구도(靑邱圖)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우리 문화사상 불멸의 업적을 남긴다. 김정호는 ‘여지승람’의 착오를 정정하고 보완하기 위해 ‘대동지지(大東地志)’를 집필한 지리학자였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서 판각하여 이를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다. 그러나 지도의 정밀함에 놀란 조정의 대신들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그를 투옥시킨다. 그는 결국 옥중에서 일생을 마친다. 경기도 수원시 한국지리원에는 고산자 김정호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 인물은 김영희(미군정법무부장), 김영찬(상공부장관), 김동휘(상공부장관), 김상준(대구매일신문 회장), 김재옥(서울지법부장판사), 김영희(경북대총장), 김찬국(신학박사, 연세대교수), 김채원(의학박사, 연세대교수), 김문호(농학박사, 경북대명예교수), 김대호(서울지법부장판사, 변호사), 김재영(국회의원), 김문달(경북대법대학장), 김칠성(국회의원), 김수학(국회의원), 김정식(국회의원), 김차덕(부산대교수), 김달호(경북대교수), 김재만(경기대교수), 김상무(영남대교수), 김진탁(계명대교수), 김경일(대구대교수), 김성환(대구대교수), 김정주(중앙대교수), 김기공(하버드대교수), 김경준(핵물리학박사), 김재두(뮌헨대교수), 김태영(성균관부관장), 심대상(울산문화방송전무이사), 김선옥(변호사), 김기현(변호사), 김용원(검사), 김종열(대한체육회부회장), 김일수(종친회장), 김갑룡(종친회장), 김동원(종친회장), 김재덕(대한한약협회회장), 김도근(인간문화재), 김도경(천도교부교령), 김치원(부산치과의사회회장), 김대성(의학박사), 김찬영(의학박사), 김병규(의학박사), 김충희(의학박사), 김석규(우루과이대사), 김재원(부산조선 사장), 김상대(아루마공업 사장), 김태우(대흥물산 사장), 김동수(대흥제지 사장), 김영수(경남운수 사장), 김진수(경일여객사장), 김상윤(유신적연와 사장), 김병덕(동양제약 전무이사), 김덕양(신명전기 사장), 김상기(동양고무 부회장), 김영식(한전지점장), 김선옥(경북교육감), 김훤(국제해운 상무이사), 김문배(문교부교육정책심의 전문위원), 김찬승(경산유지 사장), 김갑동(동일한천 사장), 김태엽(삼강건업 사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1世 만(萬), 22世 희(熙), 23世 시(時), 24世 진(鎭), 25世 호(浩) 승(承), 26世 재(載) 재(在) 식(植) 동(東), 27世 선(善) 진(鎭) 찬(燦) 창(昌), 28世 영(永) 윤(潤) 훈(勳), 29世 식(植) 종(鍾), 30世 병(丙) 대(大) 순(淳), 31世 기(基) 순(純) 상(相) 병(秉), 32世 종(鍾) 노(魯) 걸(杰), 33世 순(淳) 공(恭) 재(在), 34世 동(東) 정(程) 현(鉉) 섭(燮), 35世 희(喜)이다.

주요파는 낙산파, 의산파, 차산파, 경손파, 상주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영주시 가흥동,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 경남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경남 밀양시 청도면 인산리, 경남 거창군 마리면 일원 등이다.

본관 청도(淸道)는 경상북도 청도군의 지명이다. 940년(고려 태조 23) 오악렷環洹소산현을 통폐합하여 청도군이라 하였다가 밀성군에 속하게 하였다. 1109년(예종 4) 감무를 두었고, 충혜왕 때 이 고을 사람 김선장(金善莊)의 공로로 청도군이 되었다가 곧 다시 감무가 파견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청도군이 되었다. 1405년(태종 5)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이 되었다가 태종 때 좌우도로 분할할 때 경상좌도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청도군이 되었고,1896년에 경상북도 청도군이 되었다. 1979년에 청도군청이 화양면으로 이전하면서 화양면이 화양읍으로 승격되었다. 청도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청도김씨(淸道金氏), 청도노씨(淸道盧氏), 청도백씨(淸道白氏), 청도어금씨(淸道魚金氏), 청도예씨(淸道芮氏), 청도조씨(淸道曺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김수형(金秀馨, 1840 庚子生) : 문과(文科) 고종 14년(1877) 별시 병과(丙科), 김희진(金憙鎭, 1848 戊申生) : 문과(文科) 고종 22년(1885) 식년시 병과(丙科), 김현석(金玄奭, 1711 辛卯生) : 문과(文科) 영조 50년(1774) 식년시 병과(丙科), 김흥서(金興西, 1677 丁巳生) : 문과(文科) 숙종 37년(1711) 식년시 병과(丙科), 김난상(金鸞祥, 1507 丁卯生) : 문과(文科) 중종 32년(1537) 식년시 을과(乙科), 김삼낙(金三樂, 1610 庚戌生) : 문과(文科) 인조 17년(1639) 별시 병과(丙科), 김유경(金有敬, 1593 癸巳生) : 무과(武科) 인조 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태인(金太仁, 1604 甲辰生) : 무과(武科) 인조 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86명이 있다. 문과 6명, 무과 23명, 사마시 55명, 역과 1명, 의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청도김씨는 1985년에는 총 15,594가구 64,369명, 2000년에는 총 23,675가구 75,56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 수는 8천여 가구가 늘었으며 인구도 무려 1만1천여 명이 늘었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1,655명, 부산 10,617명, 대구 7,402명, 인천 1,499명, 경기 4,558명, 강원 1,204명, 충북 1,125명, 충남 2,183명, 전북 5,068명, 전남 3,153명, 경북 8,066명, 경남 7,836명, 제주 103명이다. 부산, 경북, 경남, 대구 지역 등 영남권에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3,555명, 부산 11,346명, 대구 9,604명, 인천 2,812명, 광주 1,787명, 대전 1,237명, 울산 2,163명, 경기 10,650명, 강원 1,304명, 충북 1,325명, 충남 1,602명, 전북 3,537명, 전남 1,352명, 경북 6,535명, 경남 6,572명, 제주 186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대구, 경북,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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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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