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성주 배씨(星州裵氏)-90,239명
(90)성주 배씨(星州裵氏)-90,239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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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星山)과 성주(星州)는 같은 지명이다. 따라서 성주배씨와 성산배씨는 뿌리가 같다. 그러나 지금도 본관을 성주와 성산으로 각각 쓰고 있다. 시조 배위준(裵位俊)은 배현경(裵玄慶)의 후손으로 고려조에 삼중대광벽상공신에 올랐다. 본관을 성주로 정한 것은 그의 현손 배인경이 고려 원종 때 흥안(성산의 옛이름)군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조에 성산군에 봉해진 배천룡을 시조로 삼는다는 설도 있다. 성주는 경상북도 성주군의 지명이다.

배현경(?~936)과 배극렴(1325~1392)은 각각 고려와 조선의 창업 공신이다. 고려 4대 개국공신 중의 한 사람인 배현경은 비록 병졸 출신이었으나 계속 승진하여 대광(大匡)에 올랐다. 그는 궁예의 폭정이 심해지자 신숭겸, 복지겸,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 건을 추대한다.

919년(고려 태조 2)에 도읍지를 송악으로 옮길 때 개주도찰사로서 새 도읍을 건설하는데 앞장 섰으며, 궁예의 잔당을 소탕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936년(태조19년) 배현경이 병으로 위독하자 태조가 친히 문병을 갔다. 왕은 '경의 자손이 있으니 그들을 잊지 않겠노라' 고 했다. 그리고 왕이 밖으로 나가자 배현경은 곧 죽었다. 태조 왕건은 가마를 멈추고 통곡했다.

배극렴은 고려 충숙왕 2년(1325년) 경북 성주읍 대황동에서 위위소윤(衛尉小尹)으로 있던 아버지 배현보와 어머니 서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역임했다. 관향인 성주 관하리에 살고 있을 때 그는 근처의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게 했다. 백성들은 그의 공을 고맙게 생각해 그 곳의 땅이나 하천을 배천(裵川), 배야(裵野)라고 불렀다. 공민왕 12년(1363) 진주목사로 부임했을 때는 산에서 잣나무를 북쪽 관아에 옮겨 심었다. 진주 사람들은 배극렴을 추앙해 이 나무를 시중백(侍中栢)이라 했다.

배극렴은 우시중으로 있던 1392년 조준, 정도전 등과 함께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 개국 일등공신이 되어 성산백(星山伯)에 봉해지고 문하좌시중이 됐다. 1392년 이성계가 세자를 책봉할 때 조준, 배극렴 등은 “평화시에는 적자가 책봉돼야 하고 난시에는 공이 많은 사람이 세자로 책봉돼야 한다.”며 이방원을 의중에 두고 주장하다가 묵살당했다. 이로 인해 조준은 사직당하고 배극렴은 불정면 삼방리로 귀양을 갔다. 이방원은 임금이 된 뒤 배극렴이 머물던 이곳의 산을 어래산(御來山), 마을을 삼방리(三訪里)라 부르게 했다.

13세기 삼별초의 대장 배중손(裵仲孫)의 본관은 미상이다. 몽골과 고려 정부에 맞서 일으킨 삼별초의 항쟁은 비록 몽고군을 물리치진 못했으나 그들의 대몽항쟁은 고려인의 자주 정신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삼별초의 항쟁을 끝으로 고려는 원나라 간섭기에 접어든다. 이후 고려는 14세기 중반까지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된다.

고려는 몽고가 침입하자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새로 옮긴 수도 강화도에서 수비를 맡을 군사가 필요했다. 이 강화도의 수비의 역할을 맡았던 군사가 바로 삼별초이다. 삼별초가 강화 지역의 수비를 맡고 있는 동안 최 항 및 최의가 피살되면서 최씨 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삼별초는 강화를 떠나 진도에 와서 대몽항쟁을 계속했으나 1271년 대장 배중손이 토벌군과의 싸움에서 전사를 한다. 대장을 잃은 삼별초는 그 뒤 2년을 저항했다. 결국 70여 명이 남게 되자 그들은 한라산 깊은 곳에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별초는 김방경이 이끈 고려군과 몽고군에 의해 멸망했다. 그러나 오랑캐의 유린에서 고려를 지키려던 의지는 확실했다. 한편 전남 진도군 임회면 굴포리 남도성 부근에는 배중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대 인물은 배명인(국가안전기획부장), 배정현(대법원장서리), 배영호(법무부장관), 배상욱(체신부장관), 배덕진(체신부장관), 배의환(한국은행총재, 주영대사), 배상명(상명여대이사장), 배철세(동아대총장), 배병주(적십자병원장), 배무(이화여대교수), 배종열(한양그룹회장), 배정일(남광토건회장), 배동조(한국통신기술사장), 배기은(동양나일론사장), 배정도(육군소장), 배광석(육군소장), 배원식(육군소장), 배병로(육군소장), 배명국(국회의원), 배성동(국회의원), 배길기(서예가, 국전심사위원, 동국대교수), 배좌식(부산가평초교장), 배렴(동양화가), 배융(서양화가), 배희한(인간문화재), 배성기(농림부차관), 배응도(상공부차관), 배수곤(은행감독원장), 배영준(남광대표이사), 배영환(삼화고속대표), 배현규(한일투자금융 회장), 배용광(대구교육대학장), 배문한(수원가톨릭대학장), 배동원(경기대교수), 배석현(동명전문대학장), 배재식(서울대법과대학장), 배도중(진주여중교장), 배복석(서울대명예교수), 배흥직(경안고등학교장), 배병희(전북대교수), 배대식(충북대교수), 배길관(충북대교수), 배상웅(제주원호지청장), 배성진(대한실업교재대표), 배재식(서예가), 배상오(충남대교수), 배양찬(목사), 배은희(국회의원), 배석(광주고등법원장), 배만운(광주지방법원장), 배양태(외과병원장), 배기완(단국대교수), 배문환(올림픽위원회환경담당이사), 배성근(신창여중재단이사장), 배성식(사중한의원장), 배계섭(강원도보사국장), 배원탁(극동해상급유대표), 배정호(울산.울주축협조합장), 배문수(영화해운대표), 배문수(마산원예협동조합장), 배두환(신학박사), 배수환(군산수산전문대교수), 배석제(군산수산전문대교수), 배옥연(여수수협전무), 배환갑(영생토건사장), 배도(효성물산 대표이사), 배지열(관세사), 배민홍(전북은행장), 배병휴(매일경제신문편집부국장), 배정석(광주소년원장), 배선홍(동산유지공업 대표이사), 배진성(동아투자금융 상무이사), 배호원(체신부기획관리실장), 배규성(농지개량조합연합회장), 배건섭(감사원대변인), 배순훈(대우전자사장), 배성순(농협중앙회이사), 배학철(작가), 배갑덕(도남모방공업 사장), 배완수(남천병원장), 배석구(의학박사), 배윤재(동아간설전무이사), 배경조(문화철물 사장), 배경병(전주종친회장), 배준호(유니온가스 사장), 배명창(부산적십자사무국장), 배철환(서강산업 사장), 배강흔(의학박사), 배금윤(주일영사), 배기문(경제기획원기획관리실장), 배기태(성균관대교수), 배기형(건축가), 배기훈(부산수산대교수), 배광호(부산지방해운항만청장), 배길도(국회의원), 배대한(농학박사), 배달이(삼성운수사장), 배동조(체신부공무원교육원장), 배동환(수산청국장), 배만규(의학박사), 배병근(변호사), 배숙(국세청직세국장), 배점모(군산호원대교수), 배정생(전북대교수) 씨 등이 있다. (무순, 본관 및 전·현직 구분 안 됨)

집성촌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송촌리, 경북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경북 고령군 덕곡면 본리리,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경북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 등이다. 주요파는 참봉공파, 생원공파, 매곡공파, 산음공파, 찰방공파, 진사공파, 직장공파, 참판공파, 직제학공파, 안렴사공파, 진사공파, 군수공파, 녹야당공파, 낙천공파, 정절공파, 미은공파 등 16개가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42명이 있다. 문과 9명, 무과 6명, 사마시 23명, 의과 1명, 율과 3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성주배씨는 1985년에는 총 15,477가구 64,297명, 2000년에는 총 27,829가구 90,23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2천여 가구,2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2,361명, 부산 5,717명, 대구 11,920명, 인천 1,644명, 경기 4,605명, 강원 1,220명, 충북 2,833명, 충남 5,764명, 전북 2,146명, 전남 5,490명, 경북 6,109명, 경남 4,394명, 제주 86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5,184명, 부산 7,466명, 대구 16,010명, 인천 3,829명, 광주 808명, 대전 3,774명, 울산 1,726명, 경기 12,950명, 강원 1,509명, 충북 3,216명, 충남 3,825명, 전북 2,441명, 전남 5,593명, 경북 6,689명, 경남 5,010명, 제주 209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대구, 경북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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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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