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 단’의 합리적 가격은?
‘대파 한 단’의 합리적 가격은?
  • 정기석
  • 승인 2024.04.0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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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대파 한 단’의 여파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가히 총선 판을 뒤흔드는 지경이다. 국민들이 채소 하나에, 농산물 가격 하나에 이토록 관심이 쏟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이다. 채소가 그냥 채소로 보이지 않고, 농산물이 그저 농산물에 그치지 않고, 총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정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파뿐 아니라 농산물 가격 급등 추세는 심상치 않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통계를 인용해 봐도, 과실, 채소, 곡물의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0.6%, 12.2%, 7.9%에 달한다. 가령, 2020년의 물가지수가 100이라면 2024년 2월 품목별 물가지수는 과실 162.9, 채소 132.0 수준에 이른다.

관련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기반 붕괴, 유통구조 왜곡 등 다양한 입장에서, 다각적인 추론 및 분석으로 농산물 가격 폭등 이유를 설명하려 든다. 가령, 지난달, 네이처의 지구·환경과학 전문 저널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승시키는 지구 온난화와 폭염'이라는 연구보고에서,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한 2035년 물가가 식량분야는 최대 3.2% p, 전체 물가는 1.18% p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심지어 국민농업포럼이라는 농업운동단체에서는, 이번 대파 파동을 ‘기후위기발 인플레이션의 시작'으로 규정, 기후위기가 이상기후뿐 아니라 농수산물 생산량의 변화, 물가 등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대파 한 단 875원’ 파동으로 촉발된 작금의 농산물 가격 폭등국면은 이전에는 유사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문 현상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농정을 합리적으로 전환해야, 대파 가격도 합리적으로

이번 ‘대파 한 단 파동’ 등 과일, 채소 가격에 놀란 정부는 1500억 원의 자금을 풀어 납품업체 단가 지원(755억 원), 농수산물 할인쿠폰 지원(450억 원), 과일 직수입(100억 원), 축산물 할인(195억 원) 등에 투입하고 있다.

물론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 눈앞에 다가온 총선에 맞춰 생산자의 농심과 소비자의 민심을 의식하는 응급처방이자 대증요법 수준의 내과적 처방에 불과할 뿐이다. 단지 발등에 붙은 급한 불을 허겁지겁 끄는 반짝 할인 효과 밖에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당연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농정의 대수슬을 위한 외과적 처방이라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을 비롯해 초국적 글로벌 5대 곡물메이저가 지배하는 세계농정 질서에 대비한 농정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의 농정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농산물 수입 확대를 골자로 한 정부 대책이 소비자 피부에 닿지 않을 뿐 아니라 국내 농업 생산을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더욱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농산물 ‘적정 가격안정대’ 유지를 통한 서민경제 보호, 농산물 계약재배 확대 등 통한 국내 공급망 확보, 농축산업을 식량안보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전략산업으로 육성, 국민 모두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보장 등을 골자로 한 농정 공약을 발표했다.

특히 농산물 가격대책 관련해서는, 농산물 가격이 ‘적정가격’보다 오르면 소비자에게 할인쿠폰을 지원하고 취약계층엔 먹거리 바우처를 제공하는 ‘기후물가 쿠폰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반대로 적정가격보다 떨어지면 차액을 농가에 지원하는 ‘농가손실 보전제도’ 도입도 약속했다. ‘적정 가격안정대’를 정하고 정책수단 발동을 매뉴얼화해 가격 급등락에 대응해 정부가 자동 개입하는 체계를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한다는 취지이다.

또 품목별 계약재배를 5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안정적 국내 생산기반을 구축, 계약재배 이행과정에서 시장가격 상승 등으로 농가 손실이 우려된다면 이를 보전하는 ‘계약재배 이행지원제도’를 도입한다. 아울러 먹거리 수매 비축을 확대하고 의무자조금 조직을 품목별 대표조직으로 육성하는 한편 이들 조직에 품목별 수입 쿼터 운영권을 단계적으로 부여하려는 계획이다.

이렇게 민주당은 국민의 먹거리문제 해결을 위해서 수요·공급 변화를 살피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수급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서민 장바구니 비상이 지속하지 않도록 농산물 가격 안정과 국민 먹거리 보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선거용 공약일 뿐이다.

농부를 먼저 대접하면, 대파 가격은 합리적으로

기후위기와 농정에 정치와 정책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많이 두고 있는 녹색정의당은 “농어업은 국민 경제와 건강의 핵심”이라며 역시 기후위기와 농업재해에 방점을 둔 총선 농정공약을 발표했다. 기존 공익직불제의 ‘기후생태직불금’ 중심 개편, 공공영역 공급 확대로 판로 확보, 농업재해보험의 ‘농어업재해보상제도’ 확대 등이 주요 공약이다.

특히, 진보적인 정당에 걸맞게 전국 모든 농어민에게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 보장, 농민과 소비자가 적절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사고파는 ‘직거래 공공도매시장’ 수도권 설치 등의 구상을 밝혔다.

아울러 현재 3.7%(농업 2.7%, 어업 1%) 수준인 농어업 예산을 6%(농업 4.5%, 어업 1.5%)까지 높이고 기후 대응과 여성농의 중요성을 반영해 농림축산식품부에 기후생태정책실과 여성농민정책관을 신설하겠다는 차별화된 공약도 개발했다. 물론 소수 정당의 선거용 공약 수준일 뿐이다.

국민의 2% 남짓 되는 독일의 농부들은 아무나 될 수 없고. 함부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독일 정부와 국민들은 국민의 먹거리, 생명을 책임지는 성직 같은 공익노동을 아무에게나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산자인 농부들은 소비자인 국민의 세금으로 직불금 등 사회적 지지와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농부의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킨다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독일의 농부처럼 정부와 국민들이 우리 농민을 대접하는 게 꼬이고 비틀린 농정을 푸는 첫 단추이다. 그러면, 우리도 어느 시장이나 가게에서든 농산물의 공정한 유통과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가격의 대파 한 단’을 농민 누구나 팔고, 국민 누구나 살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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